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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해외여행은 오래 남지 않는가

DIKARCHIVE 2025. 5. 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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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해외여행은 오래 남지 않는가
해외여행의 순간은 찬란하다. 트레비 분수 앞에서 동전을 던지고, 마추픽추의 새벽 안개를 바라보며,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첨탑 아래에서 고개를 치켜들며 감탄한다. 감각은 고양되고, 풍경은 경이롭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른 뒤, 그 기억은 종종 희미하게 사라진다. 뚜렷한 장면 대신, “아, 그때 참 좋았지”라는 말 몇 마디와, 스마트폰 속 사진 몇 장만이 남는다.

이따금 기억은 왜곡된다. 사실 그날은 무더위와 피로, 길을 잃은 당황스러움이 더 생생했는데도, 우리는 애써 아름다운 장면만을 떠올린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인간의 기억은 경험의 크기나 장소의 유명세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까운 일상의 풍경, 자주 거닐던 산책로, 별것 아닌 하루의 나들이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더 따뜻하고 구체적인 기억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기억은 단순한 이미지의 저장이 아니다. 낯선 장소에서의 경험은 그 순간엔 강렬하지만, 그 장면을 나중에 불러올 때 필요한 연상 구조가 부족하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나 캐나다 밴프 국립공원의 장대한 풍경은 분명 압도적이지만, 우리 일상과의 연결 고리가 약하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 기억을 지탱해줄 ‘배경 데이터’가 머릿속에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반면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 자주 마주치는 골목과 풍경은 다르다. 같은 장소를 계절마다 다르게 경험하고, 다양한 상황과 감정으로 덧입히기 때문에, 그 기억은 여러 층위의 감각과 감정으로 쌓인다. 예컨대 남산을 떠올릴 때, 우리는 지난 주말뿐 아니라 몇 년 전의 봄, 친구와 걸었던 여름밤, 가족과 나눴던 대화까지 덧붙여 떠올린다. 기억은 그 장소와 삶이 얽힌 복합적인 이미지로 형성된다.

결국 해외여행은 이미지로 남고, 일상의 여행은 서사로 남는다. 익숙함 속에서 반복되고, 누적된 감정이 진한 기억을 만든다. 인류의 유산을 직접 본 경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일상의 문맥에 엮이지 않는 이상, 기억 속에서 오래 살아남긴 어렵다.

사진이 아닌 이야기로 남는 여행. 그것은 꼭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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