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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4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

DIKARCHIVE 2023. 4. 8.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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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

저자 나카타니 아키히로

 

 

 

제2의 성인식을 올려라

얼마 전, 샐러리맨으로서 나의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었던 하쿠호도(일본의 광고회사)의 입사동기에게서 메일이 왔다. 동기회를 하자는 것이었다. 회사를 그만둔 지 10년이 지났지만 동기회를 하자는 제안은 처음이었다. 동기회의 주제는 ‘성인식’. 올해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내딛은 지 스무 해가 되는 해이므로, 정식 사회인으로서 성인식을 올리자는 취지인 것이다. 내가 하쿠호도에 입사한 것이 1984년. 따라서 2004년은 사회인이 된 지 꼭 20년이 되는 해이다. 나의 1년 선배들은 작년에 성인식을 가졌다고 한다.

 

사람들은 흔히 40대를 ‘아저씨 세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40대는 결코 아저씨 세대가 아니다. 사회인으로서는 지금까지 미성년에 불과했던 것이다. 20대에 회사에 들어갔다고 즉시 사회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지 20년이 지나고 성인식을 치러야만 비로소 어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즉 40대의 성인식은 이제야 겨우 사회인으로서 자각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곳에 도착했다는 의미이다. 사회인으로서 성인식을 맞이한 지금, 당신은 자신의 삶에 자각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10대에 했던 일을 다시 시작하라

사람의 인생에서 하나의 기준점이 되는 시기는 환갑, 즉 60세이다. 원을 그려서 0세와 60세를 똑같은 위치에 표시해보자. 그런 다음, 시계의 분을 표시하듯 원을 10세와 20세, 30세, 40세, 50세, 60세로 구분해보자. 그러면 0세와 정면으로 마주 보는 곳은 30세가 된다. 40대는 40세부터 50세까지의 시기를 가리키는데, 40대와 대칭적인 위치에 있는 것은 10세부터 20세까지의 10대이다. 다시 말해, 40대는 10대를 다시 한 번 살아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40대에 접어들면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오게 되고, 앞으로 10년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될까?’ ‘지금처럼 계속 살아가도 후회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과 갈등은 10대의 방황과 매우 흡사하다.

 

20대는 일을 배우는 나이이고, 30대는 자기 스스로 일을 해내야 하는 나이이다. 20대를 어시스턴트 디렉터(AD: Assistant Director)라고 하면 30대는 디렉터(Director)이다. 그리고 40대가 지나면 전체의 일을 관장하는 프로듀서(Producer)가 된다. 프로듀서는 디렉터보다 한 걸음 물러서서 현장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인생도 되돌아보지 않으면 안된다.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고 그럭저럭 부끄럽지 않은 지위에 있지만, 매우 복잡미묘한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작은 성공을 거두었을지는 모르지만 미래의 행복을 보장받을 수 없는 시기. 그것이 40대의 정체이다. 당신은 지금 무엇에 대해 고민하고, 무엇에 대해 갈등하고 있는가?

 

 

 

지금부터 행동체력을 단련하라

40대에 ‘다시 해보고 싶은 일’은 ‘지금까지 해보지 못하고 남겨둔 일’이 아닐까? 20대와 30대는 개개인의 체력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다. 하지만 40대부터는 체력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지금 ‘인생 80년’이라고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40대는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남아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0대와 40대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체력이다. 40대가 10대의 반복이라고 해도 이미 10대의 체력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40대 나름대로 체력을 키우는 방법이 있다. 체력이 있는 사람은 건강도 가지고 있고, 그곳에서 태어나는 정신력도 가지고 있다.

 

‘체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행동체력과 면역력이 바로 그것이다. 행동체력은 빨리 달린다든지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는 것을 가리킨다. 40대에 접어들면 이 행동체력이 확연히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행동체력은 정신력에 의해서 크게 좌우된다. ‘나는 이제 틀렸어’라고 여기면 틀린 것이고, ‘아니야, 나는 아직 괜찮아’라고 여기면 괜찮은 것이다. 그만큼 행동체력은 의식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신이 도중에 포기하지 않으면 40대에는 10대에서 얻을 수 없는 행동체력을 얻을 수 있다. 당신은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미리 포기하고 미리 좌절하지는 않는가?

 

 

 

정신력이 필요한 분야에 도전하라

40대에는 행동체력과 면역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정신력이다. 다시 한 번 10대를 살아갈 때, 10대와 똑같은 방법으로 살아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40대밖에 할 수 없는 방법으로 10대를 다시 살아가야 한다.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력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에서는 10대에게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아무리 체력이 뛰어나도 정신력이 뛰어난 베테랑에게 이길 수 없는 종목도 있다.

 

많은 나이에도 금메달을 딸 수 있는 대표적인 스포츠는 사격이다. 사격은 나이가 어린 선수보다 나이가 많은 역전의 노장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사격처럼 표적을 맞히는 게임으로는 볼링과 골프, 당구, 양궁 등이 있다. 이런 스포츠에서 중요한 것은 젊음과 체력이 아니라 경력과 노련미이다. 경력과 노련미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동안 얼마나 아수라장을 헤쳐왔느냐?’하는 정신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40대에는 베테랑이 아니면 승리할 수 없는,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한 분야에서 승부를 내야 한다. 당신은 정신력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작은 실수에도 즉시 사과하라

얼마 전, 한 호텔에서 서비스에 관한 강의를 했을 때였다. 강의를 마치고 휴대전화를 확인해보았더니 부재중전화에 똑같은 전화번호가 여러 번 찍혀 있었다. 처음 보는 전화번호였다. 아무리 모르는 전화라도 몇 번씩 찍혀 있으면 공연히 신경쓰이게 마련이다. 그때 또 그 전화번호가 찍힌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전화를 받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죄송하지만 몇 번에 거셨나요? 혹시 잘못 거신 게 아닌가요?” 그러자 상대방은 ‘알겠습니다!’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며 불쑥 전화를 끊었다. 그런 경우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일단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그때 문득 ‘혹시 나도 이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한 적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등줄기가 차가워지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당신이 잘못했습니다’라고 지적해주었을 때 ‘미안합니다’가 아니라 ‘알겠습니다’로 대답하지는 않는지,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아야 한다. 상대방이 잘못을 지적해주면 순순히 사과하는 것이 진정한 사회인이 아닐까? 그런데 최근에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순순히 사과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더구나 그 사람이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보통사람이라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40대에 접어들어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은 나이가 되었을 때, 미안하다고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은 멋있는 사람이다. 큰 실수에 대해서 사과하는 것보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작은 실수에 대해서 사과하는 편이 삶의 윤활유가 되는 것이다. 당신은 실수를 저질렀을 때, 순순히 사과할 수 있는가?

 

 

 

부하직원에게도 먼저 인사하라

‘멋있는 20대’와 ‘꼴불견 20대’는 별로 차이가 없다. ‘멋있는 30대’와 ‘꼴불견 30대’도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40대에 접어들면 ‘멋있는 40대’와 ‘꼴불견 40대’로 크게 나누어진다. 가장 큰 차이는 인사하는 방법이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직장에 들어가면 인사하는 방법부터 배운다. 그래서 20대에는 누구나 가정교육을 잘 받은 예의바른 어린아이처럼 공손하게 인사한다. 그것이 40대까지 계속 이어지면 인사에 무게가 담겨 있는 멋진 인사로 이어지는 것이다. 40대 이후의 정중한 인사에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무게가 담겨 있다. 멋진 50대, 멋진 60대가 되기 위해서는 40대에 예의를 배워야 한다. 40대라는 마지막 시기를 놓치면 영원히 예의를 배울 수 없다.

 

40대는 자기가 먼저 인사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거드름을 피울 수 있는 나이이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거만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거만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 하지만 부하직원에게도 먼저 인사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멋진 40대’가 될 수 있느냐 ‘꼴불견 40대’로 끝나느냐가 정해지게 된다. 20대는 접대를 받기보다 접대를 하는 쪽이다. 그러나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지위가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40대에 접어들면 접대를 하기보다 접대를 받게 된다. 어느 의미에서는 안전지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는 곳에서 도망치려고 하면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다. 더구나 거드름을 피울 수 있는,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결코 ‘꼴불견 40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당신은 부하직원에게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할 수 있는가?

 

 

 

반복연습을 통해서 성장하라

나이가 들수록 점점 하기 싫은 것이 있다. 바로 반복연습이다. 즉, 반복연습이 귀찮아지는 것이다. 스포츠는 모두 반복연습이다. 학교 공부도 반복연습이며 일을 배우는 것도 반복연습이다. 그리고 외국어 공부는 반복연습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10대와 20대는 오로지 반복연습을 되풀이하는 과정이다. 지금 자신의 몸과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쌓아온 반복연습의 잔재라고 할 수 있다. 기억에는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이라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단기기억은 그 순간만 기억하면 될 뿐, 장기적으로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반복연습을 하지 않아도 외울 수 있는 것이 있으나 그런 기억은 물거품처럼 즉시 사라져버린다.

 

무엇인가를 배우고 습득하는 과정은 모두 반복연습이다. 배움에 반복연습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는 없다. 그리고 반복연습을 할 때는 끊임없이 쓸모없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능숙해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40대에 접어들면 공인중개사나 소믈리에(Sommelier: 와인 감정사)와 같은 자격증을 따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지식을 외워야 하는 반복연습을 거쳐야 한다. 육체적인 암기나 두뇌적인 암기 모두 반복연습을 많이 하는 사람의 승리로 끝나게 되어 있다. 따라서 40대라고 해도 장기기억에 필요한 반복연습의 중요성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당신은 지금 반복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쓸모없는 일에 도전하라

‘더 효율적인 방법이 없을까?’ ‘더 편안한 방법이 없을까?’ 이런 식으로 40대에 접어들면 무슨 일에든 효율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면서 ‘뭐가 이렇게 힘들고 복잡하지? 편안한 방법이 없다면 그만두자’라고 어떤 일이든 쉽게 포기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성공 확률 100퍼센트의 일도 없고, 실패 확률 100퍼센트의 일도 없다. 성공 확률이 70퍼센트, 50퍼센트, 30퍼센트라고 했을 때 얼마나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느냐는 매우 미묘한 문제이다.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은 대부분 확률에 의지한다. ‘내 성적이라면 이 대학에 70퍼센트는 합격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대학에 지원하자.’ 이런 발상에 사로잡히면 40대에 접어들었을 때 할 일이 하나도 없어진다.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이 전부 쓸모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효율적인 방법으로 의미 있는 일만 하려는 발상이나 쓸모없이 체력과 정신력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사고방식으로는 창조적인 일에 도전할 수 없다. 원래 도전이란 단어에는 쓸모없는 작업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도전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애초에 70퍼센트 성공하는 것은 도전이라고 할 수 없다. 도전이란 성공할 확률이 극히 낮은 일들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부터 새로 시작하는 일은 거의 쓸모없는, 어쩌면 제로로 돌아가는 반복연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멋있는 40대’는 반복연습에 의한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사람이다. 때문에 ‘이것만 배우면 성공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 없을까?’라고 생각하지 말고, 끊임없는 반복연습에 의해 자기만의 방식을 터득하려고 하는 자세를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효율적인 방법만 찾고 있지는 않는가?

 

 

 

많이 고민하고 많이 반문하라

사람의 인생에는 죄질이 무거운 중대한 사건을 일으키는 2대 나이가 있다. 17세와 48세이다. 사람은 누구나 17세가 되면 난폭하게 날뛰고 심하게 흔들리고 격렬하게 폭발한다. 마음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거운 불안이 마구 소용돌이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48세에도 난폭하게 날뛰고 심하게 흔들리고 격렬하게 폭발한다. 그래서 10대 후반을 사춘기라고 하고, 40대 후반을 사추기라고 한다. 사춘기와 사추기는 가장 크게 마음이 흔들리는 시기이자 자신의 가치관을 돌아보며 ‘이것으로 괜찮을까?’라고 반문하는 시기이다.

 

10대도 그러하지만 40대에 접어들면 자신의 내부를 향해서 ‘이것으로 괜찮을까’, ‘이대로 나아가도 괜찮을까?’라고 끊임없이 반문하곤 한다. 모든 것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고 있을 때는 ‘이것으로 괜찮을까?’라고 고민할 기회가 없어진다. 그러므로 벽에 부딪히고 궁지에 몰리고 함정에 빠지는 10대와 40대는 오히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10대처럼 방황하며 고민할 수 있는 마지막 나이인 40대. 자신의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고민할 수 있는 나이인 만큼, 40대에는 마음껏 고민하면 되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마음껏 고민하고 있는가?

 

 

 

성공 느낌에 휩싸이지 마라

40대에는 커다란 실수만 저지르지 않으면 그럭저럭 어느 정도의 지위에 올라간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공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지금까지 열심히 일한 사람이나 어느 정도의 지위에 있는 사람, 고생을 많이 한 사람, 산전수전을 겪은 사람일수록 성공했다는 느낌에 휩싸인다. 성공했다는 착각에 빠진 시점에서 그 사람의 인생은 끝날 수밖에 없다. 지금은 20대에도 성공했다는 느낌에 휩싸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도쿄대에 들어간 것만으로 성공했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대학생들이 취업하고 싶어하는 10대 기업에 입사한 사람은 벌써 성공을 거머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것을 성공으로 여겨서는 인생의 목표가 너무 시시하지 않는가?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는 사람들은 일부러 ‘성공’이란 두 글자를 멀리하는 법이다. 지금 일류 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신적인 역전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신입사원들 중에 성공 느낌에 휩싸여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지금은 ‘벤처기업의 신화’라는 말을 듣는 회사도 처음에 시작할 때는 은행 문턱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때문에 그때 아수라장을 헤쳐나온 사람들과 이미 성공 느낌에 휩싸여서 입사하는 신입사원과는 전혀 의식이 다르다. 전자는 아직도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는데, 후자는 성공 느낌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40대에 접어들면 자기도 모르게 성공 느낌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면 그것을 끝으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40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성공 느낌에 휩싸이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느냐 하는 의식의 긴장감이다.

 

 

 

자유시간을 많이 만들어라

며칠 전에 어느 기업의 경영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함께 식사하고 싶으니까 비어 있는 시간을 알려달라는 것이다. 나는 그 즉시 이렇게 대답했다. “언제든지 좋습니다. 사장님에게 맞추지요.” 그는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세계적인 부자를 만나도 조금도 부럽지 않았는데, 나카타니 씨는 참 부럽군요. 자유시간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요.” 성공했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 중에 ‘언제든지 좋습니다. 당신에게 맞추지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자유시간이 적은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 사회에서는 자유시간을 많이 가지고 있는 성공한 사람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40대에 접어들면 사람을 보통 인생의 성공자냐, 패배자냐로 나누곤 한다. 그러나 그와는 달리 이렇게 구분할 수도 있다. 자유시간이 있느냐, 자유시간이 없느냐이다. 멋진 40대가 되려면 자유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비록 수입이 적고 연봉이 적어도 자유시간이 많으면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은 돈보다 시간이 중요하고 청빈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얼마나 자유시간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 얼마나 수첩의 일정표에 여백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일정표에 약속을 채우는 데만 몰두하면 인생을 마감할 때 ‘아뿔싸!’라고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된다. 40대에 접어들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아뿔싸!’라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당신에게는 지금 자유시간이 얼마나 있는가?

 

 

 

순수하게 기쁨을 느끼는 일을 하라

나는 1959년생으로, 현재 40대 중반이다. 40대에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면 과연 볼링은 어떨까? 내가 볼링을 한다고 얘기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재미있었다. 40대에 ‘왜 그런 것을 하지요?’라는 분야를 만난 사람은 커다란 행운을 만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이 무관심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 남들로부터 찬사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하는 만큼, 그 사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이다.

 

“정말 대단합니다!” “역시 다르시군요.” 이런 말을 듣는 분야의 일을 하는 것은 도전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주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평가의 연장선에서 하는 것에는 도전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다. 도전이란 단어는 평가의 연장선에 없는 것을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했을 때 비로소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바꾸어서 말하면 자신만의 기쁨을 느끼는 일에서 주변 사람들의 이해나 존경, 평가를 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당신은 지금 순수하게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라

10대나 20대에는 애초에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버릴 것도 없다. 때문에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의 승리로 끝나게 되어 있다. 반면 40대에 접어들면 버릴 수 없는 것들이 주변을 가득 메우게 된다. 현실적으로는 자녀의 교육비와 주택대출금이 목을 조이고, 앞으로도 계속 가족들을 먹여 살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압박감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또한 자신의 부모는 물론이고 아내의 부모도 은퇴해서 경제적으로 돌봐줘야 하는 등, 전후좌우를 둘러보면 모두 자신에게 기대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지금까지 착실히 쌓아온 평판과 재산, 지위와 신뢰를 모두 내동댕이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면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소유물 중에는 빼앗을 수 있는 것과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재산이나 판권과 같은 권리들은 쉽게 빼앗을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악착같이 지키려고 하는 지위와 명예도 얼마든지 빼앗을 수 있다. 또한 명함이나 사원증과 같은 것은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그것들은 모두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빼앗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밑천으로 삼아, 제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다. 멋진 인생은 지금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모두 제로가 되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달려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만이 멋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이라도 제로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

 

 

 

골인지점이 없는 경쟁을 하라

이 세상에서 가장 대답하기 곤란한 것은 ‘당신의 꿈은 무엇이죠?’라는 질문이 아닐까? 나는 지금 볼링과 함께 볼룸댄스를 배우고 있다. 사람들은 항상 나에게 “왜 볼룸댄스를 배우는 거죠? 나중에 무엇을 하고 싶나요?”라는 질문을 한다. 볼링으로 말하면 ‘나중에 프로 테스트를 받을 건가요?’라는 질문과 똑같다. 그들이 알고 싶은 것은 단 한 가지, ‘이 사람의 골인지점은 어디인가?’라는 점이다. 모든 사물에는 골인지점이 있는 것과 골인지점이 없는 것이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골인지점이 없는 것을 하고 있다. ‘당신은 결국 무엇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지요?’라고 묻는 사람은 모든 것에 골인지점에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있는 사물의 절반에는 골인지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경쟁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골인지점이 있는 경쟁과 골인지점이 없는 경쟁이다. 10대 시절에는 주로 골인지점이 없는 경쟁을 한다. 목표가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20ㆍ30대에는 주로 골인지점이 있는 일을 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은 되도록 빨리 골인지점에 도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경쟁한다. 골인지점이 있는 경쟁을 계속하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런 목표 없이 그냥 할리는 없다. 무엇인가를 위해서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 나는 볼룸댄스를 연습할 때마다 큰 발견을 하곤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깨닫지 못한 굉장한 것이다. 나는 내일부터 딴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라는 새로운 발견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추상적인 것에서 구태여 골인지점을 찾으라면, 그건 새로운 발견이 아닐까? 당신은 지금 골인지점이 있는 경쟁만 하고 있지는 않는가?

 

 

 

라이프워크를 가져라

40대에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다. 앞으로 평생할 수 있는 일, 즉 ‘라이프워크(Lifework)'를 만드는 것이다. 내 라이프워크는 무엇일까? 나는 아마 이 세상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글을 쓰고, 볼링과 볼룸댄스를 하고 있을 것이다. 글을 쓰는 일에 골인지점이 없듯, ’성공‘이나 ’행복‘이라는 단어에도 골인지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공‘이란 단어 앞에 멋진 아치가 있거나, 성공했다고 골인 테이프를 끊는 것은 아니다. 행복과 충족감, 성취감, 만족감과 같이 무엇인가를 이루어냈다는 보람은 골인지점에 들어갔다고 맛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라토너가 느끼는 최고의 쾌감이 골인했을 때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는 뛰어난 마라토너에게도 42.195킬로미터의 레이스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42.195킬로미터를 힘들게 달린 마라토너가 최고의 행복을 느끼는 때가 골인하는 순간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마라톤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승부의 윤곽이 드러나는 35킬로미터 지점이다. 때문에 마라토너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5킬로미터가 남았다는 팻말이 보이는 순간이다. 사람의 인생에도 이와 똑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60세에 삶을 마감하는 사람은 60세에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행복을 느낀다. 즉 행복은 골인지점에 도착하기 전에 존재하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행복을 느끼고 있는가?

 

 

 

승패보다 미의식에 집착하라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갖는 것이다. 평생에 걸쳐 할 수 있는 일을 갖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똑같은 형태이다. “연애에서 당신의 목표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사람들은 보통 ‘나는 지금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다’라고 대답한다. 마치 골인지점을 설정하는 것과 비슷한 발상이다. 40대에는 중간 골인지점에 도착한 듯한 느낌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면 마음속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게 된다. 그곳에서 사람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새로운 골인지점을 만드는 사람과 골인지점이 없는 일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일이나 취미에서 승패가 없는 세계에 도착할 수 있으면 자신만의 집착과 독특한 미의식을 가진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참선에는 승패가 존재하지 않는다. ‘저 녀석이 스님의 죽도를 더 많이 맞았으니까 내가 이겼다.’ ‘죽도로 세 번 얻어맞으면 여기서 퇴장이다.’ 이런 규칙과 규율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일과 취미는 참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통해 자신을 연마하고 한 단계 성장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집착하면 승패에는 집착하지 않게 된다. 승패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해서 폼을 잡는 것도 아니고 자포자기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나 취미에 대해 적당히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자신이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승패에 신경 쓰이지 않을 뿐이다. 당신이 승패보다 더 집착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연봉을 줄이기 위해서 고민하라

20ㆍ30대에는 누구나 연봉을 늘리는 기쁨에 빠진다. 내년에는 올해 받은 연봉보다 조금 더 받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하지만 40대에 접어들면 연봉을 늘리는 기쁨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런 기쁨에 빠지면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고 해마다 연봉이 올라가면 ‘더 많이! 더 높이!’하고 계속해서 위를 목표로 하게 마련이다. 그러면 세월이 흐를수록 성취감과 만족감을 얻을 수 없는 비극에 빠지게 된다. 연봉이 줄어들면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오히려 연봉이 계속 늘어나면 ‘이것은 내 인생의 위험신호이다. 연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라고 고민해야 한다.

 

연봉이 줄어들면 일단 자유시간이 늘어난다. 그러면 그 자유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연봉이 줄어들면 고민해야 하는 것들이 하나씩 늘어난다. 그러면 그곳에서 한 단계 성장하면서 행복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인생에 대한 고민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로지 연봉을 늘리고 성장곡선에 올라가는 것은 도전자의 삶이 아니라 편안함을 추구하는 안일한 사람의 삶이다.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하면 연봉을 늘리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연봉을 줄일 수 있을까를 생각하라. 그러면 당신도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으니까. 당신은 지금 연봉을 줄이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가?

 

 

 

일을 부하직원에게 넘겨줘라

리더가 감기에 걸려 결근했거나 출장을 가면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본인은 ‘이 일은 내가 없으면 할 수 없어!’라고 거드름을 피우게 된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변 사람들에게 일을 전달하는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세상에는 부하직원이 할 수 있는 일까지 모두 떠맡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40대에는 부하직원에게 맡겨도 좋은 일은 부하직원에게 맡겨야 한다.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는 일은 손에서 놓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일만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와 극기정신이 필요하다.

 

자신이 일을 선택할 수 없는 20ㆍ30대 시절에는 이런 것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상사가 시키는 일만 하면 충분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을 선택할 수 있는 40대에 접어들면 자신밖에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일은 반드시 주인공이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없다. 가끔은 길을 지나가는 단역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때도 있다. 더구나 단역은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그 사람밖에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실제의 사회생활에서는 주인공은 대체할 수 있어도 조연은 대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당신은 지금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는 일까지 모두 껴안고 있지는 않는가?

 

 

 

인생의 스승을 발견하라

40대에게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스승을 발견하는 일이다. 40대라고 스승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40대이기 때문에 일을 가르쳐주고 인생을 가르쳐주는 스승이 더 절실히 필요하다. 40대에 접어들면 나이로 보나 사회적인 지위로 보나 스승의 입장에 놓이게 된다. 자신은 이미 최고 위치에 올라와 있으므로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고 여기기 쉬운 것이 40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후의 순간에 성공하는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스승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나이에 스승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또한 성공을 거머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20대나 30대의 젊은 시절에는 반드시 스승이나 코치가 있게 마련이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아도 회사나 사회에서 무조건 안겨주는 것이다. 그에 비해 40대에 들어서면 ‘내가 당신을 이끌어주는 스승이 되어주지요’라고 자진해서 나서는 친절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 자기가 먼저 ‘죄송하지만 저의 스승이 되어주십시오’라고 부탁하러 가야 하는 것이다. 40대에 들어서면 스승이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나이에 구애되지 말고, 자신이 배우고 싶은 사람으로부터 배우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당신은 지금 자신만의 스승을 가지고 있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라

20대에는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일만 하려고 한다. 하지만 결정권이 없기 때문에 좀처럼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할 수 없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책임자가 되고 결정권자가 되기를 원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려는 것이다. 반면에 30대에는 열심히 노력하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40대에 들어서면 하고 싶어하는 일만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하지만 하고 싶어하는 일만 하게 되면 새로운 발견이나 만남을 가질 수 없지 않을까? 자신이 원하는 일만 할 수 있으면 원하지 않은 일은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사람의 속성이다. 그러나 그 일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이라면 신은 그 사람에게 의외의 발견이나 새로운 만남이라는 선물을 안겨준다.

 

40대에는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을 하면서 일의 폭을 넓혀야 한다. 애초에 베테랑이 될수록 일의 폭은 좁아질 가능성이 있다. 베테랑이란 말에는 전문가라는 뜻도 담겨 있지만 그만큼 가능성이 좁아졌다는 뜻도 담겨 있으니까. 사람은 원래 자신이 잘하는 일만 하려고 하는 법이다. 그것이 자신의 인간적인 깊이를 멈추게 만들 수도 있다는 부정적인 면까지는 보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 때문에 출장을 갔다고 하자. 그러면 일이 끝났다고 해서 곧장 돌아오지 말고 다른 곳에 들러 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은 지금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있는가?

 

 

 

몸과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라

20ㆍ30대는 모든 것을 자신의 품안으로 모으는 시기이다. 20대가 경험과 지식, 인맥을 쌓는 시기라고 하면 30대는 그것을 살려서 정열적으로 일을 하는 시기이다. 반면에 40대는 쓸모없는 것을 버림으로써 몸을 가볍게 만드는 시기이다. 40대가 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은 거의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20대의 연장선에서 계속 모으기만 하면 결코 행복해질 수도, 마음이 풍요로워질 수도 없다. 수집가로서 한 걸음 전진해서 진정한 수집가의 대열에 들어서려면 그동안 모은 것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하나둘씩 버릴 수 있게 되면 정말로 집착하는 것만 남게 된다. 모든 것을 구입하는 곳은 골동품점이 아니라 단순한 잡동사니 상점에 불과하다.

 

수집의 진정한 의미는 ‘모으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집착한다’는 말에서 모으는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실은 그 반대이다. 집착한다는 말은 정말로 소중한 것만 남기고 모두 버린다는 뜻이다. 일도 그와 다르지 않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나 리더로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일수록 세심한 부분까지 전부 자신이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는 일은 과감하게 아랫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책임과 권한을 넘겨주면 자기 일이 간단해지고 신경 써야 할 일이 줄어든다. 그런 다음에 최종적으로 남은 것이 정말로 자기가 집착해야 할 일이다. 당신은 지금 정말로 집착해야 할 일만 하고 있는가?

 

 

 

결벽주의에서 벗어나라

뜨거운 혈기가 남아 있는 20ㆍ30대에는 결벽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많다. “회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 조직은 많은 모순점을 안고 있다.” “앞으로 이렇게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주장의 뒤편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바로 청결주의이며 결벽주의이다. 40대에 접어들면 이런 의식을 바꾸어야 한다. 지저분하게 살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더 깨끗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신적으로 깨끗한 상태를 만들려고 할 때, 깨끗이 하자는 구호만으로는 좀처럼 깨끗해지지 않는다. 더러움을 만든 다음, 모두 끌어모아 버려야만 전체를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 더러움을 부정하면 결코 깨끗한 상태로 만들 수 없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세상에는 깨끗한 것도 있고 더러운 것도 있다. 주위를 깨끗하게 만들려면 쓰레기통이 필요하고, 청소를 하려면 걸레가 필요하다. ‘우리 집에는 더러운 걸레는 두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방은 지저분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40대에는 더러운 걸레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걸레가 더러워지면 다시 깨끗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40대에 접어들면 단순한 결벽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40대에 들어서면 더러움을 만들어 주위를 깨끗하게 만드는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은 주위를 깨끗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가?

 

 

 

남의 행복을 위해 일하라

30대까지는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면 된다. 현실적으로도 주위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별로 없다. 자기 일도 처리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는 없지 않는가? 30대까지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보다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녀야 한다. 하지만 40대에 접어들면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고, 자기 스스로 생활해나갈 수 있다. 때문에 그때부터는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나누어줘야 한다.

 

자원봉사라고 하면 사람들은 ‘나도 하고 싶지만 할 시간이 없다’라고 말하곤 한다.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자원봉사란 말은 곧 테레사 수녀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은 모든 사람들이 1년 365일 남을 돕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조금 나누어주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40대에 들어서면 작은 것이라도 남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러면 그때부터 그 사람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사람은 자신이 행복할 때만 행복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자신도 모르게 기쁨의 웃음이 터져나오곤 한다. 당신은 지금 남의 행복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능력을 과시하지 마라

40대에 들어서면 누구든지 자기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40대에는 10의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발휘할 필요는 없다. 20대에는 10의 힘이 있으면 12의 힘을 발휘하려고 한다. 6의 힘밖에 없어도 그것을 모두 발휘하려고 하는 것이 20대로, 그만큼 패기와 의욕으로 똘똘 뭉쳐 있다. 반면에 10의 힘을 가지게 되는 40대에는 10의 힘을 모두 발휘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음악가에 비유하면, 10의 힘을 가지고 있어도 6의 힘으로 연주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온몸의 힘을 빼고 적당히 하라는 뜻이 아니다. 능력을 과시하지 말고, 6의 힘으로 연주함으로써 10의 힘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40대의 올바른 사고방식이다.

 

패션감각이 없는 사람은 중요한 파티에 참석할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액세서리를 전부 꺼내어 온몸을 치장한다. 그런 사람은 ‘감각이 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재산을 가지고 있는 40대는 액세서리가 많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것을 전부 치장한다면 품위 없는 사람으로 손가락질받기 십상이다. 그런 경우에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액세서리를 장식함으로써 ‘이 사람은 많은 액세서리를 가지고 있지만 오늘은 이것 하나만 장식했다. 아주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자신의 힘을 과시할수록 그 사람의 얄팍한 내면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당신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의 60퍼센트만 발휘하고 있는가?

 

 

 

인생의 키워드를 만나라

40대에는 책을 읽는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20ㆍ30대에는 어떻게 하면 한 권의 책에서 많은 ‘노하우’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하지만 40대에는 한 권의 책에서 하나의 ‘키워드’만 얻을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여겨야 한다. 한 권의 책에서 하나의 키워드를 얻을 수 있으면 그 책을 읽은 의미는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데 책에서 많은 노하우를 얻으려는 사람은 책을 손에 들면 ‘밑줄 친 곳이 많으냐 적으냐?’에 집착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키워드형 독서’를 할 수 없다. 책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키워드를 만날 수 있으냐 없느냐는 것이다. 책 속에서 반짝거리는 한 줄, 한 마디의 키워드를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나머지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긋기보다 동그라미로 키워드를 감싸곤 한다.

 

책을 선물한 사람에게는 책을 읽고난 뒤 감상을 말해주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 ‘이 사람은 책을 제대로 읽는 사람이구나. 이 사람에게 책을 선물하기를 잘했다.’ 이런 기분이 들게 만들어주는 사람은 ‘그 책에서 키워드를 얻었습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다. 경영 컨설턴트인 다니구치 마사카즈 씨에게 책을 선물하면 그는 항상 ‘이 책에서 이런 키워드를 얻었습니다’라고 키워드를 써서 보내준다. 책을 받은 보답으로 책 안에서 나의 영감과 센서가 잡아낸 키워드를 돌려주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이 책 안에서는 이 한마디밖에 찾을 수 없었다’라는 뜻이 아니다. ‘이 책에서 이런 굉장한 한마디를 만날 수 있었다’라는 느낌을 한마디의 키워드에 응축하는 것이다. 그 키워드는 지금까지의 경험과 상승작용을 해서 무한히 확대되는 힌트나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다. 당신은 이 책에서 어떤 키워드를 얻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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