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HOTOGRAPHY

2차 세계 대전 이후 드레스덴 재건

by DIKARCHIVE 2025. 1. 31.

2차 세계 대전 이후 드레스덴 재건

제2차 세계 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건 중 하나였다. 세상이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엄청난 공포와 비극의 장소였다. 6년간 지속된 전쟁으로 약 7500만 명이 목숨을 잃고 2500만 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망자 수 외에도 전투와 폭격으로 인해 많은 유럽 도시들이 폐허가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독일의 드레스덴이다.

 

 



1945년 2월, 소련군은 독일군을 독일 깊숙이 밀어붙이고 있었지만 독일군은 여전히 저항하고 있었다. 연합군은 소련이 독일을 제압하고 전쟁을 종식시키지 못할까 걱정했다.

 

 



영국과 미국의 지휘관들 지휘 하에, 연합군은 소련이 혼란과 격변으로부터 이득을 얻을 수 있도록 독일의 대도시들을 폭격하기로 결정했다. 폭격은 2월 13일 밤에 시작되어 1.5일 동안 지속되었다.

 

 



1000대 이상의 항공기가 4000톤 가까운 폭발물과 1000톤 이상의 소이탄을 드레스덴에 투하했다. 먼지가 가라앉자 끔찍한 결과가 드러났다.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6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28,000채의 주택 중 24,000채가 잔해로 변했다. 학교, 병원, 주택이 소이탄 폭격으로 불타 버렸다. 드레스덴 폭격 2개월 후, 나치 독일은 항복했고 전쟁은 끝났다. 5년 후, 새로운 독일은 드레스덴 재건을 시작했다.

 

 



독일인들은 먼저 드레스덴의 역사적 유적지 재건을 시작했다. 신정부는 드레스덴을 더욱 현대화하고 사회경제적 인구 구성을 변화시키기를 원했지만, 셈퍼 오페라(Semper Opera)와 츠빙거 궁전(Zwinger Palace)과 같은 장소는 재건 과정에서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교회, 왕궁, 궁전과 같은 일부 역사적 유적지는 수리가 불가능했다. 따라서 독일인들은 그것들을 완전히 파괴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재건 작업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독일은 60년대에 들어서야 일부 건물들을 수리할 수 있었다.

 

 



전후 시대에는 긍정적인 사건들도 일어났다. 영국의 또 다른 재건 도시인 코벤트리(Coventry)는 옛 적국 간의 새로운 우정을 강조하기 위해 드레스덴과 자매 도시가 되었다. 또한 영국 기금은 90년대에 드레스덴의 재건을 계속 지원하기 위해 60만 파운드를 모금했다. 오늘날에도 드레스덴에서는 다양한 수준의 재건이 진행되고 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