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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프랑스의 중세 요새 도시 까르카손(Cite de Carcassonne)

by DIKARCHIVE 2025. 2. 17.

프랑스의 중세 요새 도시 까르카손(Cite de Carcassonne)

오크시타니 지역에 위치한 까르카손 시는 중세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프랑스의 요새 도시이다. 이 도시는 위치상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 중심지 중 하나로 기능했다. 대서양과 지중해를 잇는 무역로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오늘날 까르카손 시는 5만 명의 거주민 외에도 인기 있는 관광지이다. 1997년부터 이 도시는 온전하게 보존된 중세 도시의 정체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만이 까르카손 시의 전략적 중요성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기원전 3500년경부터 다양한 집단이 이 지역에 정착했다. 켈트족이 이 지역에 정착한 최초의 집단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켈트족은 언덕 위에 도시를 건설하고, 최초의 요새를 구축했다. 켈트족 이후 로마인들이 이 지역을 점령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도시를 개조했다. 북쪽 성벽의 하부 구조 등 일부 개조된 흔적은 아직도 남아있다.

 

 



이 도시의 요새는 하루나 1년, 심지어 한 세기에 걸쳐 완성된 것이 아니다. 로마인들을 시작으로, 서고트족, 사라센인, 스페인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랑스인들이 성벽을 보강하고, 최종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17세기까지 까르카손 시는 군사적 요충지였으며, 수많은 공격을 격퇴하였다. 특히 백년전쟁 동안 이 성벽 도시는 잉글랜드 군대의 대규모 공격과 포위 공격에 맞서 싸웠다. 이 도시는 또한 성벽 위에 덧대어 설치하는 흉벽(hoardings)을 최초로 사용한 요새 도시가 되었다. 흉벽은 방어자들이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고도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이후 수세기에 걸쳐 유럽이 점차 평화로워지면서 이 도시는 군사 기지에서 무역 중심지로 변모하였다.

 

 



이 요새 도시는 53개의 탑과 전초 기지가 있는 두 개의 광범위한 외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망루에 더 쉽게 접근하기 위해 이 도시에는 자체 도개교가 있다. 여러 국가들이 요새를 건설하는 데 기여했기 때문에 로마식 벽돌로 지어진 로마 시대의 벽과 프랑스 시대의 벽 사이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또한, 이 구역은 한때 가톨릭 종교재판소가 있던 곳이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종교재판소 탑(Inquisition Tower)이라고 불린다.

 

 



이 도시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19세기 중반의 복원 작업 덕분에 현재의 모습과 인기를 얻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폴레옹의 군대 해체령으로 인해 이 도시는 황폐해졌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 대중은 분노했고, 관료들이 성을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을 것을 요구했다. 약 50년에 걸친 대대적인 보수 작업 끝에 까르카손 시는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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