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중세 요새 도시 까르카손(Cite de Carcassonne)
오크시타니 지역에 위치한 까르카손 시는 중세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프랑스의 요새 도시이다. 이 도시는 위치상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 중심지 중 하나로 기능했다. 대서양과 지중해를 잇는 무역로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오늘날 까르카손 시는 5만 명의 거주민 외에도 인기 있는 관광지이다. 1997년부터 이 도시는 온전하게 보존된 중세 도시의 정체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만이 까르카손 시의 전략적 중요성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기원전 3500년경부터 다양한 집단이 이 지역에 정착했다. 켈트족이 이 지역에 정착한 최초의 집단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켈트족은 언덕 위에 도시를 건설하고, 최초의 요새를 구축했다. 켈트족 이후 로마인들이 이 지역을 점령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도시를 개조했다. 북쪽 성벽의 하부 구조 등 일부 개조된 흔적은 아직도 남아있다.
이 도시의 요새는 하루나 1년, 심지어 한 세기에 걸쳐 완성된 것이 아니다. 로마인들을 시작으로, 서고트족, 사라센인, 스페인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랑스인들이 성벽을 보강하고, 최종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17세기까지 까르카손 시는 군사적 요충지였으며, 수많은 공격을 격퇴하였다. 특히 백년전쟁 동안 이 성벽 도시는 잉글랜드 군대의 대규모 공격과 포위 공격에 맞서 싸웠다. 이 도시는 또한 성벽 위에 덧대어 설치하는 흉벽(hoardings)을 최초로 사용한 요새 도시가 되었다. 흉벽은 방어자들이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고도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이후 수세기에 걸쳐 유럽이 점차 평화로워지면서 이 도시는 군사 기지에서 무역 중심지로 변모하였다.
이 요새 도시는 53개의 탑과 전초 기지가 있는 두 개의 광범위한 외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망루에 더 쉽게 접근하기 위해 이 도시에는 자체 도개교가 있다. 여러 국가들이 요새를 건설하는 데 기여했기 때문에 로마식 벽돌로 지어진 로마 시대의 벽과 프랑스 시대의 벽 사이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또한, 이 구역은 한때 가톨릭 종교재판소가 있던 곳이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종교재판소 탑(Inquisition Tower)이라고 불린다.
이 도시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19세기 중반의 복원 작업 덕분에 현재의 모습과 인기를 얻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폴레옹의 군대 해체령으로 인해 이 도시는 황폐해졌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 대중은 분노했고, 관료들이 성을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을 것을 요구했다. 약 50년에 걸친 대대적인 보수 작업 끝에 까르카손 시는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