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의 삶은 한국과 여러모로 다르다. 때로는 불편함을 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예상치 못한 장점들도 많다. 특히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과는 다른 독일만의 문화는 삶의 질을 높이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독일에 거주하며 느끼는 삶의 긍정적인 면모들을 살펴본다.
1.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독일에서는 나이가 개인의 활동이나 직업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40대 후반의 사람이 디스코 클럽에서 젊은이들과 어울려 춤을 추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다. 한국에서는 나이 상한선 때문에 신입 지원이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독일 기업에서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의 신입 사원도 흔히 볼 수 있다. 40세가 넘어 **아우스빌둥(Ausbildung, 직업학교)**에 진학하는 사람들도 많으며, 10살 이내의 나이 차이는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이에 따라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한국 문화와 달리, 독일에서는 나이 제한 없이 자유롭게 삶을 즐기고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클럽에서도 40대 이상 중년층이 자유롭게 입장하고 즐기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2. 성 역할 고정관념이 적은 사회
독일은 남녀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한국에 비해 현저히 적은 사회다. 한국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고, 데이트 비용이나 가정을 책임지는 부분에서도 남성의 부담이 크다는 인식이 있다. 반면 독일에서는 남녀 임금 격차가 적고, 여성이 남편보다 높은 직급을 갖거나 수입이 더 많은 가구와 커플도 많다. 돈 관리 또한 각자 하는 경우가 흔하며, 데이트 비용도 각자 부담하는 칼 더치 또는 여성이 더 내는 경우도 흔하다. 인건비가 비싸 직접 집을 수리하는 경우가 많은 독일에서는 남편이 없어도 여성이 혼자 못질을 하거나 톱으로 나무를 자르는 등 한국에서는 남성의 역할로 여겨지는 일들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는 여성도 기피 직업이나 이공계열에 종사하는 비율이 한국보다 높기 때문에 전반적인 임금 격차가 적게 나타나는 결과이기도 하다.
3.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노동 환경
독일의 노동 환경은 한국에 비해 야근이 현저히 적다. 한국의 경우 잦은 야근이 일상인 반면, 독일에서는 대부분 야근을 하지 않는다. 이는 사용자(고용주)와 노동자 모두 야근을 기피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강력한 노동법은 야근 시 엄격한 수당 지급을 의무화하므로, 고용주는 야근을 최소화하려 한다. 또한 노동자 입장에서도 야근 수당에 높은 세금(약 55%, 소득 구간, 자녀 수, 혼인 여부에 따라 상이)이 부과되기 때문에 굳이 야근을 하며 추가 수당을 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많은 독일인이 돈을 적게 벌더라도 여유로운 휴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 사용자, 노동자 모두 야근을 기피하는 것이다.
오후 5시에 퇴근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퇴근 후 장을 보고 운동을 해도 저녁 7시 정도밖에 되지 않아, 개인 시간 활용이 용이하다. 어학 공부 등 자기계발이나 취미 활동을 즐길 여유가 충분하다. 지난 글에서 독일 상점의 이른 마감 시간과 일요일 휴무, 관공서의 짧은 업무 시간을 단점으로 언급했지만, 이는 바꿔 말하면 노동자로서의 삶이 그만큼 편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국의 24시간 편의점 시스템, 늦게까지 영업하는 마트와 백화점은 소비자로서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이는 곧 한국 사람들이 그만큼 오래 일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독일은 소비자의 편의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노동자의 휴식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다.
4. 높은 청결도
독일은 세계적으로도 깨끗한 나라에 속한다. 길거리에 쓰레기가 거의 없고, 곳곳에 쓰레기통이 잘 비치되어 있다. 간혹 담배꽁초가 눈에 띄는 것이 유일한 흠이지만, 전반적인 청결도는 한국보다 더 높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집을 보러 다닐 때 느껴지는 깔끔함은 인상적이다. 물론 지역이나 도시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서독 지역은 대부분 청결하다.
5.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문화
독일 사람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타인의 시선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으며, 청바지나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것도 자유롭다. 한국에 비해 명품 착용 비율이 현저히 낮고, **키크(KIK)**와 같은 저렴한 의류 매장에서 옷을 구매해 입는 사람들이 많다. 독일 브랜드인 아디다스(Adidas) 의류나 신발 착용 비율도 한국에 비해 낮다는 점은 흥미롭다. 한국에서는 옷차림이 다소 부실하면 무시당하거나 가까운 지인에게 지적받는 경우가 있지만, 독일에서는 타인의 외모나 패션에 무관심한 편이다. 자동차 역시 경차를 타는 것에 대한 편견이 적으며, 벤츠(Benz)를 타는 경우에도 한국처럼 허세의 의미보다는 단순히 좋은 차이거나 자국 브랜드이기 때문에 타는 경우가 많다. 독일에서는 소득에 비해 과도하게 비싼 차를 구매하는 카푸어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6. 데이팅 앱 사용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
한국에서는 데이팅 앱 사용을 숨기거나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지만, 독일에서는 그렇지 않다. **틴더(Tinder)**와 같은 데이팅 앱을 통해 연인을 만났다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럽이나 서양권에서는 한국처럼 유흥 문화, 소개팅 문화, 술자리 모임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데이팅 앱을 통해 상대를 만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7. 상대적으로 적은 인종차별
독일이 인종차별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타 유럽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독일인들은 나치 시대를 최악의 흑역사로 여기며, 인종차별에 대해 스스로 강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 많은 아시아계 거주자들이 독일에서 인종차별을 거의 겪지 않았다고 말하며, 오히려 타지에서 온 이들을 챙겨주는 친절한 독일인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소수의 극단적인 사상이 존재하지만, 이는 한국에서 일부 극단적인 사상이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8. 친절하고 이해심 넓은 사람들
독일 사람들의 전반적인 친절함과 이해심은 독일 생활의 큰 장점 중 하나다. 처음 독일에 왔을 때 구글 맵이 작동하지 않아 길을 헤맬 때, 낯선 독일인이 30분 넘게 동행하며 호스텔까지 안내해 준 경험은 독일인의 친절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길을 물을 때도 단 한 번도 거절당한 적이 없으며, 영어가 서툰 경우에도 손짓 발짓이나 그림을 그려주며 돕는 경우가 많다. 독일은 비영어권 국가 중 네덜란드 다음으로 영어를 잘 구사하는 국가 중 하나다.
또한 **베게(WG, 셰어하우스)**에 거주할 때 김치 냄새 때문에 걱정했지만, 하우스메이트나 집주인들이 아무 문제 없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국인들이 김치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오히려 담배 냄새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등 역으로 배려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인도 향신료나 아랍 음식, 태국 똠얌꿍(Tom Yum Goong) 등 강한 향신료를 사용하는 다양한 문화권의 음식 냄새를 일상적으로 접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평균적으로 독일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이해심이 넓은 편이다.
9. 저렴한 의류 및 식료품 물가
독일은 한국보다 비싼 물가도 있지만, 저렴한 물가도 많다. 대중교통비와 방값(서울 제외)은 한국보다 비싸며, 외식비도 한국의 국밥 한 그릇 가격(6~8천 원)보다 비싸 10유로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의류, 마트 식료품, 헬스장 등은 한국보다 훨씬 저렴하다.
사람의 손이 거치는 서비스 (이발, 대중교통, 기술자 수리, 외식 등)는 한국이 저렴한 반면, 기계로 대량 생산되는 물품 (옷, 쌀, 빵, 각종 식자재, 공산품 등)은 독일이 훨씬 저렴하다. 특히 보세 의류의 가격 차이가 크다. 한국에서 청바지 한 벌에 2만 원, 후드티에 3~4만 원을 지불해야 하지만, 독일의 **키크(KIK)**와 같은 저가 의류 매장에서는 청바지 2유로, 백팩 3유로, 후드티 4유로, 아기 옷 1.5유로 등 매우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품질 또한 한국의 보세 의류와 큰 차이가 없다는 평가다. 헬스장 월 회비도 최신 시설임에도 30유로(약 4만 원) 정도이며, 쌀이나 빵은 한국의 절반 가격, 고기는 30~50% 저렴하다. 우유 1리터는 0.79유로(약 1천 원)에 구매할 수 있다. 한국의 마트 물가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한국은 외식비가 저렴하고 마트 물가가 비싸 외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사람의 노동력이 저렴하고 기계 생산품이 비싼 구조 때문일 수 있다. 독일은 반대로 노동자로서의 삶의 질이 높은 대신 소비자로서의 편리함은 감수해야 하는 구조다. 자전거 이용이 매우 활발하며, 배달원들도 자전거를 많이 이용한다.
10. 풍부한 복지 혜택
독일은 다양한 복지 혜택을 제공한다. 싱글에게는 큰 혜택이 없지만, 영주권 취득 후 대학원에 진학할 경우 입학금만 내고 국제 학위 과정을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 국제 학생들도 등록금을 내지 않거나 연간 40만 원 정도의 소액만 지불하는 경우가 많다. 비싼 대중교통비도 학생 신분일 경우 해당 지역의 트램과 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세금은 싱글 남녀 기준 33%가량 부과되지만, 결혼하면 약 25% 수준으로 떨어지고, 자녀를 낳으면 세금 비율이 계속해서 낮아진다. **양육수당(Kindergeld, 킨더겔트)**은 자녀 1명당 약 230유로(약 30만 원)가 지급되며, 3명째부터는 그 폭이 더욱 커진다. 자녀가 3명이라면 매달 약 100만 원 정도를 국가에서 지원받을 수 있으며, 이 양육수당은 자녀가 만 18세가 될 때까지 매달 지급된다. 양육수당 외에도 다양한 지원금이 있어 자녀가 있는 가구는 정부로부터 꾸준히 지원금을 받는다. 싱글일 때와 자녀가 있을 때의 소비 수준 차이가 한국만큼 크지 않으며, 싱글맘이나 싱글 대디는 더 많은 양육수당을 받는다. 저소득층에게도 추가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복지 혜택은 영주권자뿐만 아니라 정식 취업 비자 이상의 모든 사람들이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면 누릴 수 있다. 영주권자부터는 추가적인 혜택이 주어진다. 이러한 복지 덕분에 최소한의 노력으로도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며, 이는 복지 제도의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여가나 개인 시간보다는 활발한 사회생활, 물질적 풍요, 즉각적인 소비의 즐거움을 중시한다면 한국이 더 맞을 수 있다.
반면, 적은 노동 시간, 안정적인 노후, 그리고 자녀와 함께하는 삶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한다면 독일이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